국수영화지 11112라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등급을 받았다.
작성자 이두형 (재수생)

성반 3번  이두형

 

   어느덧 11개월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 지났다. 처음 이곳에 온 나는 어떤 상태였을까 곱씹어본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 의해 강제로 했던 공부, 그로 인해 싫어진 공부만큼 부모님과의 관계도 소원했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그래도 공부를 하긴 했었는데, 그 이후로는 정말 벼락치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신이 꽤 잘 나와서 집안 어른들이 기대를 참 많이 걸으셨고, 난 그게 참 미안하고 싫기도 했다. 내가 공부를 잘한다고 나 스스로 말하고 다닌 적도 없고, 그런 쪽에는 관심도 없고 그저 놀기나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인데, 그런 상태로 고3까지 성적은 떨어지기만 하고, 난 이미 재수를 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속으로 공부해야 하는 건 알지만 대책 없이 놀기만 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내 마음속 한구석에 꽉 차 있어서, 그리고 내가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게 공부밖에 없어서. 항상 놀면서 불안했던 나날들과 달리, 기숙학원에 온 그날부터 내 마음은 편해졌다. 마치 산에서 길을 잃은 조난자가 내려가는 길을 찾은 듯 홀가분했다. ‘그래, 이제 새 마음으로 공부만을 바라보며 1년을 보내자. 기왕 하는 거, 만점을 목표로 미친 듯이 달리자.’라는 생각으로 그때부터 공부만 했었을 거 같다.


   첫날이 아직도 기억난다. 내가 생각한 재수/기숙과는 다르게 험악하게 생긴 애들이 꽤 있어서 살짝 무서웠다. 머리를 민 친구들도 보였고, 뭔가 이 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기계처럼 1년을 보내고 간다는 사실이 굉장히 어색했다. 그렇게 학습/생활 관련 안내를 받고,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많이 막막했다. 하지만 여러 선생님과 꾸준히 상담을 하면서 방향과 우선순위를 정하고, 플래너를 철저하게 지키며 공부를 하다 보니 ‘별거 아니다’ 같은 자신감이 금방 붙었다. 또, 주변에서 해주는 좋은 이야기들, 선생님들의 조언들을 새기며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부족한 점들을 채워나갔다.


   첫 정식적인 시험을 보고 등급이 생각보다 낮게 나와서 우울할 뻔했지만, 그 우울마저 생각나지 않도록 공부하면 결국의 승자는 나일 것이다 라는 마음으로 공부하여 결국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국수영화지 11112라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등급을 받았다. 심지어 수학에서는 사설과 학평에서 떨어지고 있던 상황이라서 미친 듯이 기뻤다. 그게 원동력이 되어 9월까지의 힘이 되었는데, 이때까지 무수한 코로나의 위협에도 버텨온 학원이 결국 거리두기 2.5단계로 인해 온라인강의로 방식을 잠깐 전환하게 되었고, 9월 평가원 시험을 앞두고 너무 놀아버려서 성적이 좀 떨어졌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자극제가 되었고, 마지막순간 수능까지 열심히 공부할 커다란 원동력이 된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어떤 상태인가 생각해본다. 아직도 일희일비는 남아있고, 자습 시간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고, 실수를 한다는 점에서, 나는 부족하다. 어떻게 보면 점수가 조금 올랐다고 많이 자만해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혹시라도 그렇다면 커다란 반성과 함께 완벽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돋움을 해야 한다. 하지만 꿋꿋하게 기본을 지키며 11개월의 대부분을 성실하게 보내며 성적, 내면의 측면에서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 나한테 많은 조건 없는 사랑과 기대를 걸어주시고, 실망만 안겨드렸음에도 한 번 더 나를 믿어준 부모님, 우리 집 가족들, 친했던 학교. 학원 선생님들, 친구들에게 이제는 보답하고 싶고 나라는 존재가 있다는 게 힘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더 매달릴 수 있는 것 같다.


   목표는 수능 만점, (연대) 의대지만, 수능 날 ‘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할 만큼은 멋지게 나의 이 재수라는 경험을 끝맺고 싶다. 결국은 진성이라는 환경이 나를 이렇게 성장할 수 있게 해준 고마운 곳이고, 여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단단하지도, 또 성적이 오를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소수의 인원으로,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한명 한명 잡아주고 끌어주며 끝까지 열심히 할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들께도 감사하다.
 

   덕분에 나의 인생 중 가장 강렬하게 남을 재수라는 기억이 굉장히 따뜻하고 의미 있었던 기억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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